전라도 해안 유적에서 본 고대 해상교역의 흔적은 한반도의 고대 해양 문화와 국제 교류사를 새롭게 조명하게 한다. 과거 한국 고대사는 내륙 중심의 농경 사회로 이해되는 경향이 강했지만, 최근 전라남도와 전라북도 해안 일대에서 잇따라 발견된 유적들은 이 지역이 활발한 해상 교역의 중심지였음을 입증하고 있다. 특히 완도, 해남, 여수, 고흥, 군산 등지에서 확인된 유물과 유적은 단순한 해안 거주 흔적이 아니라, 고대의 선박 기술, 무역망, 외래문화의 유입 경로를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2025년 현재, 전라도 해안 유적 연구는 한국 해양 고고학의 핵심 주제로 자리 잡았다. 출토된 토기, 철기, 유리 구슬, 청동기 등은 한반도 남해와 일본, 중국 남부 해안 지역 간의 교역 관계를 구체적으로 밝혀주는 중요한 자료다. 본문에서는 전라도 해안 유적의 주요 발굴 사례와 고대 해상교역의 양상, 그리고 그 역사적 의미를 중심으로 살펴본다.
1. 전라도 해안 유적의 주요 발굴 사례와 특징
전라도 해안 유적의 연구는 주로 해안 퇴적층, 패총(貝塚), 선착지 유적, 그리고 해상 유물 인양 조사로 이루어지고 있다. 가장 주목할 만한 지역은 해남 군곡리 유적, 여수 오동도 인근 해저 유적, 그리고 고흥 마도 해상 유적이다.
먼저 해남 군곡리 유적에서는 청동기 시대 후기의 토기, 조개껍데기, 철기류, 해양 생물 뼈 등이 대량으로 발견되었다. 특히 해양산 자원과 내륙산 자원이 함께 출토된 점은 당시 교역이 해안과 내륙을 연결하는 복합 네트워크로 이루어졌음을 보여준다.
여수 오동도 인근 해저에서는 목제 선박 구조물과 철제 도구가 발견되었는데, 이는 고대 한반도 남부의 선박 제작 기술 수준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다. 선체의 형태와 나무 결합 방식은 일본 아스카 시대의 배 구조와 유사하며, 이는 양 지역 간 기술 교류의 가능성을 시사한다.
고흥 마도 해상 유적은 삼국시대 전후의 교역망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 평가된다. 여기서는 중국 남조계 청자 조각, 일본 야요이식 토기, 그리고 남해안 토기류가 함께 출토되어 다국적 교류가 활발히 이루어졌음을 입증했다.
이처럼 전라도 해안 유적은 단순한 생활 흔적이 아니라, 한반도가 고대 동아시아 해상 교역망 속에서 중개자 역할을 했음을 보여주는 구체적 증거로 평가된다.
2. 고대 해상교역의 구조와 역사적 의의
전라도 해안 유적에서 드러난 고대 해상교역의 흔적은 세 가지 측면에서 주목할 만하다.
첫째, 교역망의 구조적 다양성이다. 해상 교역은 단순한 물자 교환이 아니라, 정치 세력 간의 외교적 관계와 연결되어 있었다. 삼국시대 이전부터 남해와 서해를 잇는 항로가 존재했으며, 전라도 해안은 그 중간 기착지 역할을 담당했다. 해남·완도 지역의 해상 유적에서 발견된 외래 토기는 당시의 교역로가 중국 남부 연안에서 한반도 남부, 일본 규슈로 이어졌음을 시사한다.
둘째, 문화적 교류의 흔적이다. 유리 구슬, 청동 거울, 화폐형 금속 조각 등은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외래문화의 상징으로서 당시 사람들의 사회적 지위와 신앙체계에도 영향을 주었다. 특히 여수와 고흥 일대에서 출토된 장신구와 장식품은 백제와 왜(倭)의 문화가 혼합된 형태를 띠고 있어, 전라도 지역이 동아시아 문화 융합의 중심지 역할을 했음을 보여준다.
셋째, 기술 전파의 통로 역할이다. 철기 제작 기술, 선박 조립 방식, 유리 가공 기술 등이 전라도 해안을 통해 유입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기술 교류는 단순히 경제적 의미를 넘어, 사회 구조의 변화와 권력 체계의 발전에도 영향을 미쳤다. 교역이 활발한 지역에서는 정치적 중심세력이 형성되었고, 그 결과 남부 해안권은 삼국시대 이전부터 독자적인 세력권을 형성할 수 있었다.
결론
전라도 해안 유적에서 본 고대 해상교역의 흔적은 한반도의 선사·고대 문화를 단순한 내륙 중심의 역사로 한정할 수 없음을 명확히 보여준다. 전라도 지역은 농경 사회의 기반 위에 해양 교류를 더한 복합 문명권이었으며, 이를 통해 한반도는 동아시아 문화 교류망의 핵심 노드로 자리했다.
이러한 연구 성과는 한국 고고학이 해양 중심의 시각으로 확장되어야 함을 시사한다. 앞으로는 해저 탐사 기술, 3D 스캔, 탄소 동위원소 분석 등을 결합해 교역 경로를 보다 정밀하게 규명할 필요가 있다. 전라도 해안 유적은 단순히 유물의 집합이 아니라, 고대인이 남긴 해상 네트워크의 실체를 보여주는 생생한 증거다. 그 속에는 바다를 통해 문화를 전파하고 문명을 교류했던 한반도인의 지혜와 역동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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